《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사피엔스》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의 저서입니다. 유발 하라리(1976~)는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피엔스》(2015), 《호모 데우스》(2017), 《넥서스》(2024) 등의 명저를 출간하여 명실상부 현시대 최고 지성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작가가 《사피엔스》를 통해 인류 발생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해설하고, 《호모 데우스》를 통해 인류의 머나먼 미래를 예측했다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는 현시대를 면밀히 진단하고 인류가 헤쳐 나갈 근미래를 다룹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책은 21세기를 향한 작가의 생각을 일, 자유, 교육, 명상 등의 스물한 가지 주제로 구분하여 목차를 구성합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기술혁명 위기, 근미래의 예측,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기술혁명 위기
우선 정보기술 혁명과 생명기술 혁명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합니다. 정보기술·생명기술 혁명으로 권위가 인류에서 알고리즘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개개인의 생각이나 욕구를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전제를 기초로 합니다. 그렇기에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국가의 대표를 선출하는 문제까지 선택의 권위는 인류 개개인에게 종속되는 것이죠. 하지만 알고리즘은 우리 자신보다 우리 자신을 더 정확히 파악해 갑니다. 유튜브, SNS, 스마트워치 등은 시시각각 우리의 관심사나 생각, 생체 정보를 수집해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있거든요. 그 결과 우리는 운전 경로, 여가 시간에 시청할 영상뿐 아니라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까지 알고리즘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만약 내 자신보다 알고리즘이 나를 더 잘 알게 된다면, 이는 권위가 개개인에서 알고리즘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하지요. 페이스북에서 수집된 이용자의 데이터가 트럼프 선거 캠프와 브렉시트 찬성 캠프 등에 활용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기술혁명은 일자리에서 인류 존속을 위협합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인지적·육체적 능력을 능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지적 능력이란 ‘인간 감정의 이해까지 포함’하며, ‘우리는 육체적 능력과 인지적 능력을 넘어, 인간이 언제까지나 확고한 우위를 유지할 제3의 활동 영역을 알지 못’합니다.(45쪽) 얼마 전 한 기사를 접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가 인간 상담사 대신 OpenAI의 인공지능 ChatGPT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내용이었지요(〈“회당 10만 원 심리상담 대신해요”… 챗GPT로 위안 얻는 MZ들〉, 중앙일보, 2025.03.23). 혹자는 아직까지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려면 멀지 않았나, 아직 예술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곧장 차이코프스키를 추월할 필요는 없’습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능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58쪽) 이는 인류가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대부분의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것, 궁극적으로는 인류가 존속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인해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도 있을 테고, 인류는 경제에서 소비자의 역할만을 담당하는 보편 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작가는 둘 모두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근미래의 예측
가까운 미래에는 자유민주주의가 붕괴하고 그 자리에 인공지능 독재가 들어설 수 있습니다. ‘권위가 인간에게서 알고리즘으로 이동함에 따라, (생략) 우리는 그 전모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대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 속의 작은 칩이 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99쪽) 또한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용 계급으로 전락합니다. 이들은 기술혁명 초창기에 새로운 일자리를 갖기 위한 노력을 수없이 반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평생 지속될 이직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할 것이고, 얼마 남지 않는 소수의 일자리도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점령당하게 됩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자주 거론되는 보편 기본소득 제도의 경우 모든 국가가 시행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시행된다 하더라도 제도 자체의 구조적인 불안정성으로 인해 지속되기도 힘듭니다. 보편 기본소득 제도는 초거대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저임금 노동을 졸업하고 고기술 산업으로 옮겨간’ 국가들만이 시행 가능합니다.(74쪽) 또한 무용 계급의 미래는 ‘소수 엘리트의 선의에 의해서 좌우될 것’(126쪽)이며, ‘기본이 아닌 사치—호화 자율주행차량, (중략) 혹은 생명공학적으로 증강된 신체—를 두고 치열한 사회 경쟁과 정치적 투쟁이 집중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77쪽)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
자유민주주의가 기술혁명 위기를 해결하기에 부적합한 사회·경제 체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가 신기술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인터넷 혁명의 방향을 이끄는 것은 정당이 아니라 기술자들’입니다.(24쪽) 또한 여태껏 ‘자유주의는 전통적으로 경제 성장에 의지해 어려운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마술처럼 해결’해왔지만 ‘경제 성장 자체가 (생략) 파괴적 기술의 발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혁명 위기를 경제 성장으로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39쪽) 인공지능 독재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술에 투자하는 만큼 인간 의식에도 투자해야 합니다. 인공지능을 잉태하는 것도, 인공지능을 유지하고 운영하는 것도 결국 인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우리가 조심하지 않는다면 다운그레이드된 인간이 업그레이드된 컴퓨터를 오용하여 자신과 세계에 재앙적 결과를 가져오는 상황을 맞게 될 것’입니다.(122쪽) 기술혁명 위기뿐 아니라 기후 위기, 핵전쟁 위기 모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 차원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세 위기 모두 다른 나라와의 협력 없이 어느 한 국가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가령 러시아는 기온 상승 덕분에 수세기 동안 염원하던 부동항은 물론 전례 없는 넓이의 곡창 지대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예시에서도 알 수 있듯, 전 지구적 차원의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다면 국가들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할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작가는 이 외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재발명하는 삶, 그것을 가르치는 교육으로의 전환, 데이터 소유 규제, 과학자의 적극적 사회 참여 등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과제를 제시합니다만, 안타깝게도 인류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우선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할 만한 대안이 없습니다. 인공지능 독재와 관련해서는, 의식을 고도로 발전시킨 철학자 집단에게 인공지능 운영의 전권을 부여하는 것 역시 또 다른 독재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전 지구적 공동체 건설의 경우 민족주의와 종교가 큰 장애물입니다. 전 인류가 국가와 종교라는 허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는 한 전 지구적 공동체 건설은 요원합니다. 따라서 작가는 맨 마지막 제언으로 ‘명상’을 제시하기에 이릅니다. 욕망도, 자아도, 민족도, 종교도 모두 허구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전제 조건임을 암시하지요.
아쉬움
결국 ‘명상’으로 귀결되는 결론은 독자로서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사회·경제 체제의 전환도, 인공지능 독재의 저지도, 전 지구적 차원의 공동체도 이루어낼 수 없으니 개인의 정신이라도 잘 유지해 보자는 식의 회피성 결론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작가가 이 ‘책의 주된 목표는 사람들이 허구와 실체의 차이를 분간해서 (중략) 허구적인 것을 위해 실재하는 것들을 해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라고 밝히더라도요(483쪽). 여기서 더 나아가 작가는 ‘80억 인류가 정기적인 명상을 시작한다고 해서 세계 평화와 전 지구적 조화가 도래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우리는 ‘전쟁을 일으킬 정말 그럴싸한 명분을 찾아’낼 것이라며(463쪽) 일말의 희망조차 남기지 않습니다. 물론 작가가 독자에게 인류 위기의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없는 문제에 해결책이 있다며 독자를 기만해서도 안 되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독자를 절망과 무기력에 빠지게 하는 결말은 피해야 하지 않았을까,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어낸 독자들에게 미약하나마 믿음과 희망의 씨앗을 심어 줄 수조차 없었던 걸까 하는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마치며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통해 인류가 처한 위기 상황과 그로 인해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미래의 모습을 면밀히 이해하게 됐습니다. 동시에 믿음과 희망이 없는 지식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통렬히 깨달았지요. 날마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을 목도하며 살아가고 있는, 커져 가는 위기감에 21세기를 살아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믿음과 희망입니다. 작가는 그조차 인간이 만들어 낸 허구라고 일축할지 모르겠지만요. 유발 하라리의 차기작 《넥서스》는 작가 특유의 번뜩이는 통찰에 더해 그 이상의 건설적인 메시지도 함께 담고 있길 믿고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