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 소리가 귀를 간지럽힙니다. 살랑이는 바람은 흙 내음을 실어 오고요. 은은한 가로등에 잠 못 드는 초록처럼 한여름 밤은 아직 생기가 분분합니다. 여기 수줍은 한 쌍의 남녀가 있습니다. 몸짓과 입매는 한참을 머뭇댑니다. 부푼 가슴의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그들은 이내 사랑의 고백을 터뜨립니다. 멋쩍은 미소로 마주 본 서로의 눈동자. 그 속에 빛나는 별들이 한가득 반짝입니다. 계절이 수없이 변한대도, 그 자리 그 모습 그대로 영원할 것만 같은 이 젊음과 낭만의 삽화. 우리가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제목에 기대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때면 이렇게 말하곤 하죠, ‘정말 한여름 밤의 꿈 같았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여름 밤의 꿈」은 우리가 바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풍자극에 가깝죠. 도취적 합일의 민낯을 들춰내는 신랄한 작품입니다. 제목에 끌려 한번 읽어볼까 했던 예비 독자들께는 흥미를 깨뜨려 유감입니다. 하지만 저도 여러분과 같은 사람 중 하나였다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건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작품을 이리도 단단히 넘겨짚고 있었을까요? 그 이유가 비슷한 제목의 노래들 때문만은 아닙니다. 일차적으로 제목이 풍기는 낭만적인 분위기 탓도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작품이 그 자체로 웃음을 유발하는 희극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한여름 밤의 꿈」의 제목 너머 진짜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줄거리
우선 이야기에는 네 명의 젊은 남녀가 등장합니다. 라이샌더와 허미아, 드미트리우스와 헬레나. 허미아의 아버지(이하 이지우스)와 아테네의 공작(이하 테세우스)은 허미아에게 드미트리우스와 결혼할 것을 강요합니다. 드미트리우스는 허미아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상황에 가세하죠. 하지만 허미아는 라이샌더의 연인입니다. 그녀는 이 모진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 라이샌더와 야반도주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헬레나에게 털어놓습니다. 그러나 드미트리우스를 사랑하는 헬레나. 그녀는 이를 드미트리우스에게 일러바치고 맙니다. 그에게서 작은 감사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요. 사랑을 찾아 떠나가는 허미아와 라이샌더, 그 뒤를 쫓는 드미트리우스와 또 그를 뒤따르는 헬레나. 숲속 깊은 여름밤, 졸음을 이겨내지 못한 네 남녀는 잠을 청하게 됩니다.
숲속에는 요정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정의 왕(이하 오베론)과 여왕(이하 티타니아)은 부부의 정이 깨어진 상태였는데요, 오베론은 오래전부터 인간 여성들에게 추파를 던져왔고, 티타니아는 한 미소년을 품에 끼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질투에 휩싸인 오베론은 하인 퍽을 시켜 계략을 꾸밉니다. 바로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팬지꽃 즙을 티타니아의 눈에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엉뚱한 상대에게 연정을 품게 하여 그녀를 골탕 먹일 작정으로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에로스의 화살에는 첫눈에 바라본 대상을 열렬히 사랑하게 하는 힘이 있거든요. 그런데 오베론은 퍽에게 또 다른 명령을 내립니다. 드미트리우스에게도 팬지꽃 즙을 바르도록 말이죠. 허미아만 바라보는 드미트리우스와 그런 그에게 상처받는 헬레나의 안타까운 모습을 우연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 한여름 밤의 소동이 일어납니다. 퍽이 실수로 팬지꽃 즙을 라이샌더에게 바르게 되거든요. 잠에서 깨자마자 헬레나를 보게 된 라이샌더, 그만 헬레나에게 반해버리고 맙니다. 무언가 잘못됨을 인지한 오베론과 퍽은 뒤늦게나마 드미트리우스의 눈에도 팬지꽃 즙을 발라 보지만, 오히려 드미트리우스까지 헬레나에게 구애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꼬일 대로 꼬이죠. 허미아는 졸지에 연인을 친구에게 빼앗겨 버린 셈이 됐습니다. 심지어 헬레나는 이 갑작스런 모든 상황이 자신을 바보 취급하려는 나머지 세 사람의 장난이라고 여기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허미아와 헬레나의 우정도 깨어지고 맙니다. 티타니아는 어떻게 됐을까요? 흉측한 반인반수(이하 보텀)에게 푹 빠져버립니다. 그리고 오베론은 그 틈을 타 티타니아로부터 질투의 원인이었던 소년을 빼돌립니다. 배신감에 울부짖는 허미아, 서로 으르렁거리는 라이샌더와 드미트리우스, 조롱받는 헬레나, 반인반수에게 빠져버린 요정의 여왕. 정말이지 대환장 파티라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군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오베론은 퍽으로 하여금 드미트리우스를 제외한 이들의 팬지꽃 마법을 풀도록 합니다. 다만, 이 소동은 그저 뒤숭숭했던 꿈으로만 여기도록 단서를 달고요. 덕분에 ─ 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 모두는 제자리를 찾는 것처럼 보입니다. 라이샌더와 허미아, 드미트리우스와 헬레나는 서로의 짝이 되어 혼인하고, 오베론과 티타니아의 관계 또한 다시 원만하게 회복됐으니까요. 자, 듣고 보니 여러분이 기대하던 ‘그런’ 이야기는 아니죠?
작품의 주제 의식 — 도취적 합일의 광기를 향한 비판
「한여름 밤의 꿈」에서 다루는 사랑은 반쪽짜리에 불과합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반쪽에도 못 미치죠. 우리는 남녀 간의 사랑을 ‘첫눈에 반함’ 혹은 ‘서로에의 강한 이끌림’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시작 단계에 있는 연인에게서 흔히 보이는 특성이며 이를 도취적 합일이라고 합니다. 마치 술과 약에 취한 상태와 비슷하기 때문에 도취라는 표현을 쓰는데, 도취적 합일에는 강렬하고 난폭하며, 일시적이고 주기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다루는 사랑이 바로 이 도취적 합일입니다. 자세히 살펴볼까요?
우선, 난폭하다는 면에서 테세우스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테세우스는 아마존의 여왕을 아내로 맞는데, 그것은 전쟁을 통한 아마존 정벌의 보상이었죠. 테세우스에게 아내 히폴리타는
칼로 (…) 구애했고 상처를 입히면서 (9쪽)
얻어낸 일종의 전리품입니다. 다음으로, 강렬히 구애하던 인물들은 도취에서 벗어나자 마치 술 취한 기억에 화들짝 놀라듯 급히 태세를 바꿉니다. 예를 들어 라이샌더는 허미아의 도취에서 벗어나자 그녀에게 “넌 꺼져, 깜둥이야!”(70쪽)라며 노골적으로 면박을 줍니다. 티타니아는 마법에서 풀려나자 보텀에게 “오, 이제 보니 역겹기 짝이 없는 얼굴이네!”(85쪽)하며 기겁합니다. 그들이 사랑이라 주장했던 것은 한낱 일시적인 실수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사랑은 짧은 도취적 합일을 넘어 지속하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됩니다.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인 활동이며,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랑에 빠질 줄만 알지 사랑에 능동적으로 머물 줄은 모릅니다. 허미아에서 헬레나로, 소년에서 보텀으로 오직 대상을 갈아치울 뿐이죠. 그들이 다른 이성에 한눈을 팔았던 것은 팬지꽃 즙 때문이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팬지꽃 즙은 그저 인물들의 성욕을 드러내는 장치에 불과합니다. 그 마법의 힘은 에로스의 화살에서 나오고 에로스는 다름 아닌 성욕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성욕의 노예인 인물들은 언제든 대상을 갈아치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도취적 합일은 일시적이므로 현재 연인에의 강렬한 마음은 사그라들 것이고, 훗날 성욕을 자극하는 또 다른 이성이 나타날 것은 자명하니까요.
그나마 이런 측면에서 예외적인 인물이 하나 있다면 바로 허미아입니다. 테세우스와 이지우스는 그녀에게 라이샌더가 아닌 드미트리우스와 혼인하지 않으면
법에 따라 죽임을 당하거나 아니면 (…) 어두운 수도원에 영원히 갇힌 채 (…) 불모의 여자로 한평생 살아갈 (12쪽)
것이라고 협박합니다. 하지만 허미아는 이에 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이 시련을 인내하며 극복하자 (…) 사랑에겐 으레 있는 좌절인 셈이니까 (15쪽)
의지를 다지며 라이샌더와 함께 목숨과 운명을 걸고 야반도주함으로써 사랑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허미아도 사랑에 있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문제는 바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라이샌더가 자신을 떠나자 그녀는 헬레나에게 “내가 너무 꼬마 같고 너무나 작아서 그이의 네 평가가 그렇게 높아졌어?”(70쪽)하며 따집니다. 실연의 이유를 자기 자신의 작은 키에서 찾는 것입니다. 허미아는 대화의 맥락과 상관없이 “‘작다’고? 그 말을 또 듣네.”(70쪽), “또 ‘조그맣다’야? ‘작고 조그맣다.‘는 말뿐이야?”(71쪽)하며 자신의 콤플렉스에 신경질적으로 집착하며 밑바닥을 드러냅니다.
헬레나 또한 같은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심각하죠. 헬레나는 스스로를 허미아와 비교하여 못난 여자라고 치부합니다. 허미아와 더불어 꽤나 아름다운 미인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은 옮잖아. 오, 미모도 그렇다면. 어여쁜 허미아, 가기 전에 네 것을 옮을래.”(17쪽)라며 허미아에 비해 자신의 외모가 보잘것없다고 여깁니다. 게다가 극 초반에 “너를 사랑하지도 할 수도 없다고 명백하게 말”(36쪽)하는 드미트리우스에게 헬레나는
애완견 다루듯이 나를 차고 때리고 무시하고 버리세요. 하지만 당신을 따르게 그럴 가치가 없더라도, 허락만 해줘요. (36쪽)
라며 아예 자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땅바닥에 내던져 버립니다. 또 무려 두 남자의 열렬한 구애를 받게 됐을 때에도 이를 자신에 대한 조롱으로 여기는 모습 또한 동일한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자기애)은 곧 타인을 사랑하는 능력과 직결됩니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온전히 사랑할 수도 없죠. 그렇기에 자기애의 부재를 타인의 사랑으로 메우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귀결됩니다. 이들은 아마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며 도취적 합일의 강렬함을 더더욱 갈망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여름 밤의 꿈」의 주제 의식은 바로 도취적 합일의 광기를 향한 비판입니다. 셰익스피어는 보텀의 입을 통해 당시 연인들의 세태를 꼬집습니다.
사랑과 이성은 요즈음 거의 자리를 같이하지 않는답니다. 더욱 유감인 건 정직한 이웃들이 그들을 친구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거지요. (55쪽)
셰익스피어는 영국인이며 무려 16세기의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의 주제 의식은 21세기의 대한민국에도 유효합니다. ‘환승이별’이라는 신조어가 널리 쓰이는 것을 넘어서, 이를 소재로 한 방송 프로그램이 시즌을 거듭하여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희극적 아이러니 — 주제 의식과 그 전달 방식의 간극
「한여름 밤의 꿈」의 매력은 위의 주제 의식을 오락적인 재미로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작품의 주제 의식과 그 전달 방식은 언뜻 공존하기 힘들어 보이는데요, 역설적으로 이 둘의 간극이 작품에 깊이를 더합니다. 한 일본의 극작가는 이렇게 말했다지요, ‘어려운 것은 쉽게, 쉬운 것은 깊게, 깊은 것은 유쾌하게’. 이 중 세 번째 계명을 분명 셰익스피어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앞에서는 작품의 주제 의식을 알아봤다면, 지금부터는 그 전달 방식인 희극성 웃음과 이것이 작품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희극성 웃음은 ‘인간성 회복을 위한 사회적 교정 행동’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계성이 인간성을 압도하는 상황은 어김없이 희극성 웃음을 유발한다’는 식으로 작동하지요.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들은 반복성, 경직성, 반사회성 등 기계장치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데, 희극성 웃음은 기계성에 압도당한 이들에게 수치심을 주는 방식으로 인간성을 회복하게끔 유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작품 속 인물들은 허구이므로 수치심을 느낄 일도 없고 교정될 일도 없습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들을 희화화함으로써 기계적으로 도취적 합일에만 몰두함이 인간성에 반하는 일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인물들을 기계장치처럼 묘사합니다. 마법에 걸린 라이샌더, 드미트리우스, 티타니아는 마치 꼭두각시 같습니다. 스스로는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마법(성욕)이라는 실에 의해 하릴없이 조종당하는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또 라이샌더, 드미트리우스 그리고 헬레나는 꼭 스프링 인형 상자 같습니다. 헬레나의 욕구(조롱 받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가 밑도 끝도 없는 두 남성의 욕구(헬레나를 독차지 하고 싶다)에 의해 좌절되다 결국 히스테릭 발작으로 폭발하고야 마는 모습이, 튀어 나가려는 스프링 인형과 이를 막으려는 상자 사이의 힘겨루기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죠. 모두 인간이 기계장치에 끼워 넣어진 것과 같은 인상을 줍니다.
둘째, 상황의 반복을 통해 웃음을 증폭합니다. 마법에 걸려 엉뚱한 상대에게 빠져드는 상황이 라이샌더, 드미트리우스, 티타니아를 통해 무려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뿐만 아니라, 마법이 풀린 인물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상대로 되돌아가는 결말 또한 희극성을 더합니다. 인간은 상황이나 장소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대처하므로 개개인의 삶은 중첩되지 않으며, 시간의 차원에서 삶을 거꾸로 되돌릴 수도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개성과 고유함은 인간성의 특징임에 반해, 반복은 기계성의 특징이자 인간성의 상실을 뜻합니다. 이 세 인물은 같은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는 점에서 몰개성적이며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마는 태엽 인형처럼 보이는 것이지요.
위 두 방식은 모두 웃음의 작동 원리 ─ 기계성이 인간성을 압도하는 상황은 어김없이 희극성 웃음을 유발한다 ─ 에 부합합니다. 따라서 독자들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함과 동시에 무의식의 단계에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게 합니다.
이 밖에, 광대 캐릭터를 통해 주제 의식을 강조합니다. 작품 속 광대들은 그 자체로 결함 많고 우스꽝스럽습니다. 헤라클레스를 “에라클레스”(22쪽)로, 완벽한을 “완벅한”(25쪽)으로 발음하는 등 말이 어눌하고 어딘가 한참 모자라 보이지요. 하지만 그들의 공연은 꽤나 의미심장합니다. 이 극중극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닮았는데요, 두 연인이 서로를 사랑한 나머지 끝내 죽음에 이른다는 내용입니다. 광대들의 연기는 어눌하고 우스꽝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공연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 ─ 일편단심한 사랑 ─ 는 결코 그렇지 않죠. 테세우스, 히폴리타, 라이샌더, 드미트리우스는 감상하는 내내 극중극과 광대들을 비웃습니다. 이 모습이 우리로 하여금 왠지 모르게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다름 아닌 우리를 거울처럼 비추기 때문입니다. 작품의 진정한 메시지는 알지도 못한 채 인물들을 비웃기나 하는 바로 우리의 모습 말이에요. 만약 어느 독자가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자신도 도취적 합일에만 몰두하는 결함을 지니고 있지 않나 스스로를 돌아볼 것입니다. 또, 더 나은 사랑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작품의 뒷맛은 씁쓸함
한바탕 웃고 난 후에 정체 모를 씁쓸함이 혀끝에 감도는 기분, 여러분도 느껴본 적이 있나요? 기본적으로 희극성 웃음은 ‘인간성 회복을 위한 사회적 교정 행동’입니다. 하지만 무의식은 그 대상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 자신 또한 교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을 심판함과 동시에, 성욕에 취해 이리저리 방황하지는 않는가 스스로를 검열한다는 말이죠. 추측하건대 이 검열에서 떳떳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한여름 밤의 꿈」의 뒷맛은 씁쓸합니다. 마치 떠들썩한 기억의 파편들 틈새로 스멀스멀 차오르는 숙취처럼.
이 이야기의 결말 또한 석연치 않습니다. 겉보기에는 모든 남녀가 제자리를 찾아 오래오래 행복할 것만 같아도, 독자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의심이라는 녀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댑니다.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테세우스는 정복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정복지에서 새로운 여성을 전리품으로 취할 것입니다. 라이샌더는 이전에도 그랬듯 또 다른 여자에게 마법에 홀린 듯 빠져들 것입니다. 또 드미트리우스가 오베론의 변덕으로 늦게나마 마법에서 깨어나면 어떡하죠? 그러면 허미아와 헬레나는 다시 경쟁자들과 외모를 비교하며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댈 것이 뻔합니다. 오베론과 티타니아는 말할 것도 없고요.
운 좋게도 몇 번의 연애를 경험했습니다. 여러 시행착오 덕에 교훈을 얻었지요. 사랑은 늘 내 안에 넘쳐흐르지 결코 밖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대상에 따라 늘어나거나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무작위적인 행운이나 감각적인 기쁨에 기댈 일도 아닙니다. 오직 결단의 문제인 것입니다. 몰아치는 설렘, 달콤함, 짜릿함! 물론 저도 좋아하지만 결국 사그라질 욕망에 불과함을 이제는 압니다. 뇌과학에 따르면 이러한 도취적 합일의 지속 기간은 보통 12개월, 길어봤자 17개월이라고 해요. 뇌가 도취된 상태를 그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셰익스피어는 「한여름 밤의 꿈」을 통해 말합니다. 불같은 사랑은 그저 성욕의 장난일 뿐이며, 성욕의 꼭두각시 노릇은 인간성을 상실하는 일이자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짓이라고요. 이는 작품 속 인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신 차리고 자기 자신을 똑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고요. 작품 제목은 참 달달한데 메시지는 쓰디씁니다. 하지만 건강한 것은 대체로 입에 쓴 법입니다.
한여름 밤의 열기처럼 식을 줄 모르는 사랑.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이 두근대는 사랑,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해 꿈에 비견할 만한 사랑. 다 좋지만,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하지 않던가요. 아쉽게도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합니다. 때가 되면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것처럼요.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뜨거운 한여름 밤에만 사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계절을 넘어 결단코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본질(인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