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카페에 앉아 있습니다. 그 카페의 한 벽면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있지요. 성실한 알바생이 가을 하늘처럼 말갛게도 닦아 놓았습니다. 그 벽 너머로 한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옵니다. 한 손으론 백팩 끈을 그러쥐고, 다른 한 손으론 스마트폰을 든 채로요.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스마트폰에 온 시선을 빼앗긴 채 실실 웃고 있습니다. 뚜벅뚜벅, 그의 걸음이 힘찹니다. 뚜벅뚜벅. 그러다…… 쾅!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남자는 이마를 감싸 쥡니다. 그리고선 긴 ─ 저렇게 길 수 있다고? ─ 팔을 허우적거리며 보이지도 않는 적을 감지하려고 용을 씁니다. 풉! 여러분을 포함해 카페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고개가 일제히 툭 떨어집니다. 음료를 뿜는 사람도,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신은 속으로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하지만, 들썩이는 어깨를 주체할 수가 없어요. 유리벽 너머로 상황 파악이 끝난 남자는 벌게진 이마처럼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휙 뒤돌아섭니다. 그리고 애써 씩씩한 척 발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뚜벅뚜벅. 아마도 그는 결심했을 것입니다. 다시는 보행 중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그것은 이 광경을 지켜본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례는 희극성 웃음(이하 웃음)의 목적과 작동 원리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과연 웃음은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요?
웃음의 목적: 인간성 회복을 위한 행동 교정
웃음의 목적은 ‘인간성 회복을 위한 행동 교정’입니다. 결함을 지닌 사회 구성원을 다시 인간답게 회복시켜 궁극적으로 더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함인 것이죠. 만약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이 인간성을 잃고 생명에 반하는 행동을 일삼아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누구나 두 팔 걷고 나서서 나무라든 타이르든 그를 도우려고 나설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를 바라지 않는 이는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DNA에 각인된 본능의 수준에서 이를 실천하고 있지요. 사람답게 행동하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웃음을 터뜨림으로써 그로 하여금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결함을 스스로 교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성과 기계성
그렇다면 인간성이란 무엇이고 결함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자세히 살펴봅시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공간에 따라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존재합니다. 그리고 시간의 차원에서 일방향으로 노쇠하고 이는 결코 불가역적이며 반복하지도 않습니다. 또, 한 사람 한 사람은 저마다의 개성을 지니고 있는 고유한 존재들이죠.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무리 지어 사회 구성원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인간성을 이룹니다.
인간성의 반대 개념은 무엇일까요? 바로 기계성입니다. 기계성은 곧 인간의 결함을 뜻하며, 앞에서 살펴본 인간성의 특징들을 뒤집을 때 바로 기계성의 특징들이 튀어나옵니다. 경직성, 반복, 고립, 부조화.
웃음의 작동 원리
웃음의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방심한 상태에서 누군가의 인간성이 기계성에 압도당하는 상황은 언제나 희극적이다.
이를 서론에 적용해 볼까요? 남자는 마땅히 유리벽을 인지하고 걸음을 멈춰 자기 자신을 보호했어야 합니다(인간성). 하지만 스마트폰에 푹 빠진 남자는 의식을 가진 생명체가 아니라 오히려 스마트폰에서 연장된 자동인형처럼 보입니다(기계성). 그래서 유리벽에 대처하지 못하고(경직성) 부딪힐 때까지 뚜벅뚜벅 걷기를 계속하죠(반복). 스마트폰에 온 감각을 빼앗긴 모습은 마치 세상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킨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본질과 비본질의 확장
이번에는 인간성을 본질, 기계성을 비본질로 그 의미를 확장해 봅시다. 그렇다면 웃음은 본질이 비본질에 압도당하는 상황에서 작동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신을 본질, 신체를 비본질이라고 할 때, 신체 활동이 정신 상태를 압도하면 웃음이 발생합니다.
선생님께서 여러분에게 근엄한 표정으로 ‘너,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따라와!’ 호통치셨습니다. 걱정이 앞섭니다. 이 선생님은 학교에서 무서운 것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분이거든요. 눈물을 쏙 뺄지도 모르죠. 오금이 저려옵니다.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여러분을 매섭게 째려보시고는 뒤돌아 걸음을 떼십니다. 그런데 발걸음 발걸음마다 방귀가 새어 나오는 거예요! 뽀옹- 뽀옹- 뽀오오옹! 이런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아야 할 것입니다. 엄격하고 불같은 그의 성격(본질)이 불가피한 생리 현상(비본질)에 압도당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책의 구성
이렇게 「웃음 ─ 희극성의 의미에 관하여」(이하 「웃음」)는 먼저 희극성의 개요와 원천을 제시한 후, 작동 원리와 그 예시를 형태의 희극성, 움직임의 희극성, 상황의 희극성, 말의 희극성, 성격의 희극성 등으로 자세히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작가는 비극과 비교해 희극이 갖는 특징, 희극의 예술성에 대한 고찰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번역의 한계
하지만 이 책에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바로 번역으로 인한 의미 전달 오류(lost in translation)입니다. 작가는 웃음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예시를 제시합니다. 그런데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예시가 내재한 희극성이 퇴색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따라서 제시된 예시를 힌트 삼아 우리말과 우리 문화에서 찾을 수 있는 다른 경우를 떠올려야 하는 불편함이 따랐지요. (위의 예시들도 모두 제가 따로 마련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를 온전히 옮긴이의 탓으로만 돌릴 순 없을 것입니다. 작가가 본문에서도 이야기하듯, 단어나 문구 그 자체에 희극성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읽는 이들 모두 프랑스어에 능통하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그래도 번역으로 인해 희극성이 어느 정도 퇴색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극과 희극의 경계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비극과 희극의 비교였습니다. 「웃음」을 읽게 된 계기 또한 이와 관련이 있었어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을 소재로 한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인데 어째서 「한여름 밤의 꿈」은 희극인가, 궁금했거든요.
위에서 기계성이 인간성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희극성이 발생한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웃음」에 따르면 기계성과 인간성이 인물의 의지로 합일될 때, 즉 인물과 결함이 의식의 층에서 하나로 융합할 때 이야기는 파멸에 이르고 비극성이 발생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죽음도 불사하는 맹목적인 사랑’이란 경직성이 바로 결함이라고 할 수 있으며, 주인공들은 그 결함과 기꺼이 하나가 되어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치닫습니다. 반면 「한여름 밤의 꿈」 속 주인공들은 마법에 ─ 사실상 성욕을 상징합니다 ─ 의해 조종되는 꼭두각시들처럼 굽니다. 이 사람을 사랑했다가, 한순간에 또 저 사람을 사랑했다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는 웃음을 유발할 뿐 결코 결함과 인간성이 합일됐다고 할 수는 없지요. 마법에 의해 인물들이 사실상 무의식의 상태에 빠져 있고, 결함이 이성을 무력화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제시한 웃음의 목적을 고려했을 때, 「한여름 밤의 꿈」은 성욕에 의해 이성을 잃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연인들의 우스꽝스러운 세태를 꼬집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웃음」은 결국 인간성에 관한 책입니다. 더 나아가 인간에게 있어 본질은 무엇이고 본질이 아닌 것은 무엇인지, 우리의 삶에 비본질이 본질을 압도한 상황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는지 고민하게 하는 책이죠. 그런데 작가는
희극 작품은 (…) 교정하고 가르치려는 무의식적인 저의가 있다는 점에서 다른 예술 작품과는 뚜렷이 구분된다. (172쪽)
라고 하며 그러한 맥락에서
웃음을 그러모아 살짝 맛을 보면 철학자의 혀끝에는 약간의 씁쓸함이 감돈다. (202쪽)
라는 말로 책을 마무리합니다. 「웃음」을 통해 많은 예비 독자들이 인간성과 본질을 의식하며 이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어떠한 저의 없이도 해맑게 미소 짓고 삶으로부터 오롯이 행복할 수 있길 또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