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한 가정의 몰락이 피워낸 용서와 사랑의 가치

2024. 06. 25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옮김: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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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18세기 후반 러시아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러시아 사회는 격렬한 시대 변화를 겪고 있는데, 이 변화의 강은 두 개의 커다란 물줄기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과학의 발달에 힘입은 이성과 합리주의의 대두로 인한 윤리의 쇠퇴이며, 다른 하나는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시장경제의 발달과 물질적 탐욕의 횡행이다. 이 두 물줄기가 만나 하나의 지점으로 귀결되니, 그것은 바로 신앙의 붕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카라마조프가의 몰락이 그 결과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이하 표도르)는 세 형제들의 아버지이다. 그러나 이상적인 아버지상에는 부합하지 않는 인물로서, 술과 여색에 빠져 세 아들들을 돌보는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하물며 첫째 아들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이하 미챠)와는 그루셴카라는 여자를 두고 연적이 되기까지 한다.

이 첫째 아들 미챠는 아버지 표도르와 마찬가지로 술과 여색에 빠져 사는 난봉꾼이다. 즉흥적이고 거친 성정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열적인 순애보의 면모도 보이는데, 결국 그루셴카에 대한 사랑에 자신의 삶을 바치게 된다. 미챠는 그녀와의 미래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유산 3000루블을 요구하지만, 표도르는 끝내 돈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러한 와중에 표도르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미챠가 그 범인으로 지목된다. 과연 그가 정말 살인 사건의 범인일지, 그렇지 않다면 과연 누가 표도르를 죽인 것인지, 미챠가 과연 어떤 판결을 받을지 궁금증을 더해가며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표도르의 죽음과 드미트리의 재판이 이 소설의 가장 굵직한 사건이긴 하지만, 이를 둘러싸고 수많은 캐릭터들이 자아내는 이야기들도 주목할 만하다. 둘째 아들 이반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이하 이반)는 무신론자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오로지 이성과 합리에 기반한 교회의 사회 유지 기능만을 지지할 뿐이다. 이반은 이러한 자신의 생각과 그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찬 캐릭터인데, 그 또한 아버지의 죽음에 얽혀들며 가치관의 혼동으로 지독한 고통에 시달린다.

셋째 아들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이하 알료샤)는 본 작품이 그의 시선과 움직임에 따라 진행될 뿐 아니라, 그의 연설로 마무리되는 것으로 보아 사실상 주인공 격의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반과는 달리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죽은 어머니가 살아생전 갓난아기의 그를 안고 성모상에 기도할 적에 그 모든 풍경이 그의 안에 각인 되어 알료샤는 성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이는 또 다른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며, 알료샤가 그루셴카나 콜랴와 같이 고통받는 영혼을 정화하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점에서 그가 구원자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 알료샤가 아이들에게 연설하는 모습은 마치 예수가 열두 제자에게 가르침을 설파하는 모습에 빗댈 수 있다.

소설의 제목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일차적으로 표도르의 세 아들들을 뜻하지만, 넓게는 그들과 같이 시대의 흐름 속에 고통받는 민중들을 대변하고, 궁극적으로는 이 가정의 몰락이 피워낸 용서와 사랑의 가치를 함께 지고 나아갈 독자들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다.

오늘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해주시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주님의 기도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주일마다 미사에서 이 기도를 외면서도, 용서는 내게 끝나지 않는 난제다. 부모에 대한 원망, 지난 연인들에 대한 분노, 하루가 멀다하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내 자신에 대한 용서 말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읽는 내내 몸부림치는 저 모든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 그리고 용서만이 참된 해답이며 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깨달음과 동시에 차오르는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예비 독자들을 위한 제안

이 멋지고도 위대한 작품을 읽기에 앞서, 예비 독자들을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목차를 미리 읽지 않을 것. 책을 읽기에 앞서 목차를 훑는 것은 종종 독자들의 모범적인 행동지침처럼 여겨지지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목차는 오히려 이야기의 온전한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목차들이 해당 분량의 핵심을 반영한다는 제 목적을 충실히 따르기 때문이다. 목차 제목이 미챠의 재판 결과의 힌트가 되어 본의 아니게 소설에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

둘째, 읽기에 앞서 기독교 교리의 기초 지식을 쌓을 것. 그것이 어렵다면, 읽는 중 옆에 성경이나 검색을 위한 인터넷 기기를 놓아둘 것.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니 만큼 해당 종교의 기초 지식이나, 적어도 중간중간 성경을 펼쳐볼 의지가 없다면(인터넷 검색이라도)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벅찰 수밖에 없다. 특히 조시마 장로나 이반이 전면으로 나서 장광설을 펼치는 부분이 그러한데, 이러한 노력 없이는 그저 글자를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참기 힘든 고역일 것이다.

셋째, 1장부터 5장까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읽어나갈 것.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1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이다. 그러한 만큼, 등장인물도 많고 그 각각에 대한 설명이 만만치 않다. 이 범위가 소설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다소 지루할 수도 있지만, 캐릭터들의 배경 스토리를 꼼꼼히 익혀둔다면, 앞으로 그들이 자아낼 이야기들이 입체적이고 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일 것이 확실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서 12:24)

작품 서두에 인용된 성경 말씀이다. 카라마조프가의 이야기는 위 성경 말씀의 밀알처럼 독자의 마음 한복판에 떨어져 용서와 사랑의 가치라는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접하고 내가 누린 기쁨을 함께 누리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한결 더 아름다운 곳으로 거듭나길 희망한다.